History of Korean Baseball

한국야구 역사에 대한 모든 것 소개, 손오공티비, 스포츠중계, 해외스포츠중계, 무료스포츠중계, MLB중계, NBA중계, EPL중계

한국 프로야구장 전경

아시아 최고의 거포 이승엽

 

한국이 낳은 아시아 최고의 거포 이승엽 (1999, 2003)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일본과의 결승 진출전… 이런 역사적인 경기마다 이승엽은 부진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팀을 승리로 이끌며 영웅의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 주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 한양대에서 삼성으로, 투수에서 타자로

이승엽은 경북고 시절 투타에서 빼어난 실력을 보여 당시 좌승엽(이승엽) 우승관(김승관)이라 불리며 입단 동기인 김승관과 더불어 경북지역 최고의 유망주로서 이름을 날린다. 고3이던 1994년 그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이듬해 한양대에 진학 예정이었으나 심한 군기 때문에 고의로 학력고사를 망쳐 결국 삼성 라이온즈에 고졸 최고 계약금을 받고 입단하게 된다.

경상중 시절 노히트노런, 그리고 고교시절 청룡기대회 우수 투수상을 받을 정도로 투수에 소질이 있었던 이승엽은 당시 김태한과 성준을 제외하고는 좌투수 기근이었던 삼성과 투수로 계약을 하게 된다. 하지만 예전부터 그를 괴롭혔던 팔꿈치 부상으로 코칭스태프의 권유에 따라 결국 타자로 전향하게 된다. 단 몇 개월 동안에 이루어진 이 두 가지 큼직한 선택은 그의 인생을 뒤바꿔 놓는 계기가 된다.

백인천 감독과의 만남, 최연소 홈런왕 그리고 우즈

1995시즌과 1996시즌 고졸 출신으로 준수한 활약을 펼친 이승엽의 인생은 1997시즌 새롭게 부임한 백인천 감독을 만나면서 또다시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미완의 대기였던 그는 스프링캠프 때 집중적으로 장타 훈련을 받았고 결국 역대 최연소로 홈런왕타점왕에 오르며 MVP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어 맞이한 1998시즌, 이승엽은 5월달까지 10개를 쳐내더니 6월에는 무려 13개의 홈런을 작렬하며 장종훈의 기록을 넘어설 수 있는 페이스를 유지했다. 7월까지 홈런 33개를 기록하며 홈런왕 2연패는 물론이거니와 신기록의 단꿈에 젖었지만 더불어 여름부터 급격히 떨어진 체력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결국 8월에서 10월까지 홈런 5개를 추가하는데 그쳤고 뚝심의 우즈가 막판 뒷심을 발휘하며 장종훈의 기록을 깨고 홈런왕과 타점왕에 오르며 MVP를 차지하게 된다. 우즈의 역전으로 그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고 겨우내 산속의 얼음물을 깨고 들어가는 등 독기를 품고 훈련을 하게 된다.

독기로 시작한 1999년 그리고 홈런 신기록

절치부심, 마음을 다잡고 맞이한 1999시즌, 이승엽의 눈빛은 이전보다 더 맹렬했고 4월부터 홈런사냥을 시작한다.

4월에 7개, 5월에는 무려 15개의 홈런을 집중시켰고, 특히 5월 19일 한화와의 경기에서는 송진우와 박성기로부터 홈런 3개를 기록, 개인통산 처음으로 한 경기에 홈런 3개를 치는 기록을 세운다. 6월에도 그의 뜨거운 방망이는 12개의 아치를 그려냈고, 6월 24일 LG와의 경기에서 최향남, 김동호, 유택현으로부터 홈런을 치며 시즌 2번째로 한 경기 3개 홈런을 치며 신기록에 박차를 가한다. 7월 25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해태와의 경기에서 이승엽은 강태원의 커브를 130m짜리 대형홈런으로 만들어 내며 우즈의 기록과 타이를 이룬 뒤 8월 2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문동환의 직구를 받아쳐 대망의 신기록을 달성했고 작년도 설움을 훌훌 털어낸다.

8월 초에 한국 신기록을 달성한 이승엽은 다가설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일본 프로야구 왕정치의 아시아 최고기록인 55개 홈런에 도전하게 된다. 뜨거운 여름에 잠시 주춤했지만 이승엽은 꾸준히 홈런을 만들어냈고 9월 30일 광주구장에서 열린 해태와의 경기에서 41호 홈런을 뺏어낸 강태원으로부터 54호 홈런을 뽑아내며 신기록 타이에 1개차로 다가선다. 그리고 이어진 한화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 그는 홈런성 타구를 받아치지만 애석하게도 데이비스의 화려한 수비에 막혀 아시아 신기록에는 다가서지 못한다.

우승의 한을 풀고 아시아를 넘은 홈런킹

매년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했던 삼성에게 있어서 2002년은 뜻 깊은 한 해였다. 1985년 통합우승 이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하며 22년 묵은 한을 털어냈고 삼성의 간판타자인 이승엽은 시리즈 20타수 1안타로 부진하다가 마지막 6차전 패색이 짙던 9회 말에 최고의 마무리 이상훈으로부터 동점 3점 홈런을 치며 우승의 교두보 역할을 했고 6번의 포스트 시즌 끝에 우승을 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타자로서는 모든 것을 이룬 이승엽은 한국시리즈 반지마저 거머쥐며 예전부터 꿈꿔왔던 해외진출을 모색하게 된다. 시즌 전 2002 홈런왕 라이벌이었던 심정수와 플로리다 마린스 소속으로 스프링 캠프에 참가하기도 한 이승엽은 이후 2003년 개막전에서 친한 친구이자 두산의 에이스인 박명환에게 연타석 홈런을 치며 기분 좋게 시즌을 시작한다.

4월에 홈런 6개를 친 이승엽은 5월에 페이스를 올리며 15개의 아치를 그리는데 5월 15일 더블헤더로 열린 LG와의 경기에서는 1차전 이승호로부터 홈런 2개, 2차전에서는 서승화와 장문석에게 각각 1개씩의 홈런을 치며 개인 최다인 하루에 4개의 홈런을 치기도 했다. 6월 10일 롯데와의 사직경기에서는 염종석, 이명우, 양성제로부터 3연타석 홈런을 쳐 자신의 세 번째 한 경기 3개의 홈런 기록을 세운 이승엽은 6월에도 뜨거운 방망이를 돌리며 5월 기록에 1개 부족한 14개의 홈런을 만들어냈다. 6월까지 홈런 35개를 기록하며 99년도 본인의 기록보다 앞선 페이스를 기록하자 사람들은 다시금 아시아 신기록에 대한 기대를 품기 시작한다.

한편 전년도 마지막 최종전까지 홈런 1위를 달렸던 심정수는 무서운 상승세로 이승엽을 추격했고 여기에 41호까지 기록했던 8월 9일 LG와의 경기에서 서승화와의 난투극 끝에 2게임 출장정지를 당하는 불운을 맞이한다. 하지만 이승엽은 8월 14일 42호 홈런을 시작으로 홈런기록에 박차를 가하면서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해 나갔다.

한편 신기록에 임박해서는 홈런볼을 얻기 위해 구름 관중이 야구장을 메우기 시작했고 2003시즌 평균 관중이 2천여 명에 불과하던 사직구장에서는 이승엽의 등장에 만 명이 넘는 관중이 외야로 몰리기도 했다. 또한 그에게 고의사구를 지시했을 때는 관중의 난동으로 경기가 일시 중단되어 김용철 전 롯데 감독이 초유의 경기 중 사과방송을 하고서야 경기가 재개되기도 했다.

그렇듯 이승엽 홈런 신기록 도전은 신드롬으로 이어졌고 그의 홈런볼을 잡기 위해 관중들은 매미채를 가져오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보통 내야가 먼저 차는 광경과는 달리 외야부터 관중이 차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심한 압박감과 라이벌 심정수의 추격에도 불구하고 결국 9월 25일 광주에서 열린 기아와의 경기에서 김진우의 직구를 통타 55호 아시아 기록 타이를 세운 이승엽은 한동안 홈런가뭄에 시달리는 듯 했으나 최종전인 10월 2일 롯데와의 홈경기에서 이정민의 직구를 결대로 밀어 치며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역대 최고의 홈런왕 이승엽

한국이 낳은 최고의 홈런타자인 이승엽은 역대 최다 MVP 수상을 기록했고 공교롭게도 홈런왕에 오른 5차례 모두 MVP 수상을 하는 기염을 토한다. 또한 2001년에서 2003년까지는 전무후무한 3년 연속 MVP 수상을 했으며 한국 야구 기록의 산실인 양준혁과 송진우도 아직까지 한 번도 MVP에 오르지 못한 것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는 1997년부터 7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가장 강력한 1루수로 기록되고 있다.

또한 통산 장타율과 OPS에서도 최고의 기록을 세우면서 최고의 장타자의 모습을 보여 주었고 최다 홈런왕과 타점왕 타이틀 홀더 그리고 6년 연속 OPS 10할 이상은 앞으로도 다가서기 힘든 영역이다.

야구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는 해결사

팬들이 이승엽을 단순히 홈런왕이 아닌 한국의 영웅으로 받드는 데는 정말 중요할 때 어김없이 해결사 본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동메달 결정전에서 0대 0으로 팽팽히 맞선 8회 일본의 에이스 마쓰자카로부터 결승 2루타를 쳐냈고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는 6차전 5 대 8로 뒤지고 있던 9회 말에 동점 쓰리런 홈런을 기록해 삼성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또한 2006년 WBC에서는 아시아 예선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8회 역전 2점 홈런을 일본의 심장인 도쿄돔에 꽂으며 대표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2대 2로 팽팽히 맞선 8회 일본 최고의 마무리 투수인 이와세로부터 결승 2점 홈런을 뽑아내며 숙적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부진 속에 일궈냈던 일본전 홈런 후 인터뷰 도중 그가 흘린 눈물은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속에 녹아들었고 야구선수 이승엽에서 인간이승엽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그는 부진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드라마틱한 결과를 그려내는 해결사이자 영웅이었다.

한국 프로야구 9년 동안 5번의 홈런왕과 MVP를 차지한 최고의 홈런왕. 그리고 각본 없는 감동의 드라마를 보여 준 그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야구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다.

“진정한 노력은 절대로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다.”

-이승엽의 좌우명

모바일로 스포츠를 즐기는 소비자들의 스포츠 중계방송을 선택하는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계품질, 로딩속도, 해설진의 역량, 실시간 스트리밍 그리고 고품질의 스포츠 분석 정보 제공 여부 입니다. 이러한 고객의 요구에 맞게 손오공 티비에서는 고객의 불편사항과 건의사항을 취합하고 개선하며 끊임없이 변화하여 현재는 스포츠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스트리밍 업체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손오공 티비의 장점은 고품질의 중계품질, 버퍼링 없는 중계, 유머감각과 정확도에 비중을 두는 해설자의 역할등에 있습니다.

“아시아 최고의 거포 이승엽”에 대한 9개의 응답

  1. redwap.pro/v/4WuisT1zvGp14.html 아바타

    I’m amazed, I must say. Rarely do I come axross a bog that’s both educative
    annd engaging, andd llet me telpl you,you’ve hit thhe nai on tthe
    head. Thhe issuje iis somthing which too feww people are speaking intelligently about.
    Now i’m very happy that I fund this during my search foor soething relafing too this.

  2. holloporn.win/v/6497656311.html 아바타

    There is certaiknly a lot tto find ouut about thjis topic.
    I lovee aall off thhe points you made.

  3. xnxx max 아바타

    Hi there tto every one, the contents resent att thjs
    site aree really awesomje foor people experience, well, keepp up the nijce woirk fellows.

  4. indoxvideos 아바타

    Hi there! Thiis post couldn’t bbe written any
    better! Reaeing throuygh his poszt reminbds mme oof myy olld room mate!
    He always kpt chattfing about this. I will foward this artticle too him.

    Pretty surfe hhe willl havce a goodd read.
    Thank you ffor sharing!

  5. phim-sex-xxx.com 아바타

    Helloo There. I discovered your weblog using msn. This
    iis a really neatly written article. I’ll bee sure to bookmark it andd
    coome back too learn exta off your useful info. Thank yoou for tthe post.
    I’ll cerainly comeback.

  6. missavxxx.com 아바타

    Heya just waned to gijve you a quick heass up aand let
    you know a feew oof the pictuhres aren’t loadinng
    properly. I’m noot sur wwhy but I thonk itts a lining issue.
    I’ve tried it in ttwo differet browsers aand both show the same outcome.

  7. xvideosway 아바타

    Goood day! Do youu use Twitter? I’d like tto flllow yyou iff tha woiuld bbe ok.
    I’m absolutely enjohing youhr bog andd look forward tto neew updates.

  8. xxxcharm.com 아바타

    Ahaa, itts pleasant cinversation rgarding thiss post att this pllace aat thiss
    blog, I have rread all that, sso noww me also commenting
    here.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Search

Popular Posts

  • 1993년 해태 타이거스의 10승 투수들과 집중력의 승리

    1993년 해태 타이거스의 배경 1993년, 해태 타이거스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중요한 한 해로 자리 잡았다. 이 기간 동안 팀은 높은 성적을 기록하며 팬들에게 큰 기쁨을 안겼다. 해태 타이거스는 1982년에 창단되었으며,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팀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들의 성공적인 경과는 팀의 구성원, 감독, 그리고 전략적가치에 크게 의존하였다. 1993년 시즌은 특히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으며, 해태…

  • 1992년 롯데 자이언츠, 한국 프로야구 최초 준PO-PO-한국시리즈 석권

    한국 프로야구 역사와 롯데 자이언츠의 출발 한국 프로야구의 기원은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대한민국에서는 야구가 국민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었으나, 공식적인 프로 리그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로 야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1982년 3월에는 첫 번째 프로 야구 리그가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구단들이 생겨났고, 각 팀은 화려한 선수들로 구성되어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롯데 자이언츠는…

  • 1985년 삼성 라이온스: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 승률의 최강팀

    서론: 1985년 삼성 라이온스의 의의 1985년 삼성 라이온스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팀입니다. 이 팀은 그 해에 놀라운 성과를 달성하며 역대 최고 승률 기록을 세웠습니다. 삼성 라이온스의 성과는 단순한 결과에 그치지 않고, 한국 스포츠사의 중요한 분기점을 형성했습니다. 당시 점차 성장하고 있던 프로야구 리그에서 이 팀의 성공은 많은 팬들과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한국…

Archi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