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4할 타자 기록을 남긴 백인천. 그의 기록은 한국 프로야구 발전의 이정표이자 찬란한 유산이다.
흔히 타격에 있어서 4할을 ‘마의 영역’ 이라고 한다. 하루에 한 개의 안타를 꾸준히 때리기도 힘든 야구경기에서 5타수 2안타의 페이스를 시즌 끝날 때까지 유지한다는 것은 실력과 더불어 신의 가호가 있어야지만 가능한 영역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테드 윌리엄스가 1941년 타율 0.406를 기록하며 마지막 4할 타자로 기록되고 있고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아직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할 만큼 타자에게 있어서 4할이란 다가서고 싶어도 다가서기 힘든 영역이다.
이런 대기록을 개막 원년에 기록한 선수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바로 백인천. 이영민 타격상을 받으며 경동고를 졸업하고 한국농업은행을 거쳐 일본 프로야구 도에이(현 니햄)에 입단한 그는 18년의 일본 프로생활 동안 타격왕 한 차례를 포함해서 총 세 번 3할 이상을 기록했고 209개의 홈런과 213개의 도루를 기록하는 등 호타준족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1979년 타율 0.340으로 타율에서 개인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후 1980년과 1981년에 각각 0.216, 0.227의 저조한 성적을 올린 그는 결국 고국으로의 귀환을 결심했고 MBC의 감독 겸 선수로 계약을 하게 된다.
하향세로 접어들었고 나이 마흔, 중년의 모습으로 고국의 그라운드에 나선 그가 대활약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이 더러 있었지만 예상을 비웃듯 그는 차원이 다른 타격으로 타율 4할은 물론이거니와 득점과 안타, 출루율, 장타율에서 압도적인 기록으로 1위에 올랐고 홈런과 타점에서도 2위를 기록하게 된다.
한편 4월 8일 동대문운동장 OB 베어스와의 경기에서는 상대 투수 강철원을 상대로 비거리 150m의 초대형 홈런을 기록하면서 파괴력을 보여 주기도 했다.
그가 기록한 타율(0.412)과 장타율(0.740)은 아직까지 통산 단일시즌 기록의 가장 윗자리에 위치해 있으며 출루율 또한 2001년 호세가 나타나기 전까지 최고기록이었다. 또한 1982년도 타격왕을 차지하여 일본과 한국에서 모두 타격왕에 오른 유일한 선수로 기록되고 있다.
참조: 타격천재 장효조